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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공주 / 동화 / 전문 / 안데르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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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공주 / 안드레센 / 김선희 번역

 

 

옛날에 아주 작은 아이를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어디에 가면 아이를 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늙은 마녀를 찾아가서 물었다.

 

아주 작은 아이를 하나 갖고 싶은데, 어디에 가면 아이를 찾을 수 있는지 말해 주세요.”

 

저런, 그건 아주 쉬워. 여기 보리 씨앗을 하나 주지. 하지만 이건 농부가 밭에서 키우는 보리 씨앗이라든가 닭이 쪼아 먹는 것들과는 달라. 화분에 이걸 심어 두고, 어찌 되는지 보라고.”

 

마녀는 그렇게 말했다.

 

, 감사해요!”

 

여인은 마녀에게 12페니2) 를 주고 집에 오자마자 그 보리 씨앗을 화분에 심었다. 씨앗은 꽤나 빨리 자라서 곧 커다란 꽃을 피웠다. 튤립 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봉오리인 채로 꽃잎을 꽉 다물고 있었다.

 

여인이 말했다.

 

정말 예쁜 꽃이네.”

 

그러면서 그 사랑스러운 붉은색, 노란색 꽃잎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입을 맞추는 순간 꽃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꽃이 피었다. 아니나 다를까 튤립 꽃이었다. 한가운데 연두색 꽃 수술 위에 아주 작은 소녀가 앉아 있었다. 소녀는 예쁘고 고와 보였다. 하지만 엄지보다도 크지 않았다. 그래서 여인은 이 아이를 엄지 공주라고 불렀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두 껍데기를 요람으로 삼았다. 이부자리는 파란색 바이올렛 꽃잎으로 만들고 장미 꽃잎으로 덮어주었다. 소녀는 밤에는 그렇게 잠을 잤다. 낮에는 여인이 꽃으로 둘러싼 접시에 놓아준 탁자에서 놀았다. 꽃줄기는 큼지막한 꽃잎이 둥둥 떠다니는 물에 담겨 있었다. 엄지 공주는 그 꽃잎을 배로, 하얀색 말 털 한 쌍을 노로 삼아 접시의 멋진 풍경을 가로지르며 노를 저을 수 있었다. 소녀는 노래도 부를 줄 알았다. 목소리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달콤했다.

 

어느 날 밤, 요람에 누워 있는데 끔찍한 두꺼비 한 마리가 망가진 창문 틈으로 펄쩍펄쩍 뛰어 들어왔다. 이 흉측하며 끈적끈적하고 큼지막한 두꺼비는 빨간 장미 꽃잎 속에 잠들어 있는 엄지 공주에게 곧장 뛰어 내려갔다.

 

이 두꺼비는 좋아서 쾌재를 불렀다. 엄지 공주가 자고 있는 호두 껍데기를 움켜잡고는 창문 밖으로 펄쩍 뛰어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폭넓은 시냇물이 흐르고, 시내 둑을 따라 진흙탕이 있었다. 이 두꺼비는 바로 거기에서 아들과 함께 살았다. 이런, 아들은 자기 어미하고 비슷하게 끈적끈적하고 끔찍했다. 호두 껍데기 속에 든 이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보고는 아들 두꺼비가 하는 말은 고작 ……윽스, ……윽스, 브레…………에크……!”이 다였다.

 

 

어미 두꺼비가 주의를 주었다.

 

큰 소리 내지 마라. 그랬다가는 이 아이 깨겠다. 우리한테서 도망갈 수도 있어. 이 아이는 백조 깃털만큼이나 가볍거든. 시냇물 속 넓은 수련 잎 안에 놓아두어야 해. 이 아이는 하도 작고 가벼우니까 거기가 섬 같을 게다. 거기에서는 우리가 진흙 속에 너희 두 사람이 살 멋진 방을 만드는 동안 달아나지 못할 거야.”

 

시냇물 속에는 잎 넓은 초록색 수련이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꼭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잎이 가장 컸기에 어미 두꺼비는 바로 그 이파리에 엄지소녀가 든 호두 껍데기를 가져다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이 가엾은 어린 것이 깨어났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는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온통 큼지막한 초록색 잎으로 둘러싸인 물뿐이었다. 물가로 다가갈 방법이 전혀 없었다. 어미 두꺼비는 진흙 속에 앉아 초록 등심초와 노란 수련으로 새 며느리에게 보여줄 방을 최고로 멋지게 꾸몄다. 문득 어미 두꺼비와 못생긴 아들이 엄지 공주가 서 있는 이파리로 헤엄쳐 왔다. 둘은 그 예쁜 침대를 가지러 왔다. 소녀를 신혼 방에 데리고 가기 전에 그 침대를 옮겨두려 했다.

 

어미 두꺼비가 소녀 앞에서 깊이 무릎을 숙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다, 네 신랑이 될 거란다. 이 진흙, 즐거운 집에서 함께 살 거야.”

 

아들 두꺼비가 하는 말은 고작 ……윽스, ……윽스, 브레…………에크……!”이 다였다.

 

이윽고 두꺼비들은 그 앙증맞은 침대를 가지고 멀리 헤엄쳐 갔다. 엄지 공주는 초록 이파리에 홀로 남아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 끈적거리는 두꺼비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두꺼비의 끔찍한 아들을 남편으로 맞고 싶지도 않았다. 아래 물속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그 두꺼비도 보고 소녀의 말도 들었다. 그래서 작은 소녀를 보려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소녀를 보자마자 저렇게나 예쁜 사람이 흉측한 두꺼비와 살러 가야 한다니 무척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물고기들은 소녀가 있는 이파리의 줄기에 모여서 그 줄기를 이빨로 갉아댔다. 나뭇잎은 시냇물 아래로 흘러가고 엄지 공주도 흘러가, 두꺼비들이 잡을 수 없는 곳까지 멀리 떠내려갔다.

 

엄지 공주는 여러 곳을 지나쳤다. 그때 덤불 속에서 작은 새들이 소녀를 보고 재잘거렸다.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로군.”

 

나뭇잎은 멀리멀리 떠내려가서 소녀는 나그네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하얀 나비가 소녀 주위를 계속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더니 소녀를 감탄해 마지않으며 그 나뭇잎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소녀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그 두꺼비가 소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둥둥 흘러가니 모든 게 무척 사랑스러웠다. 태양이 물에 닿자 황금빛으로 빛났다. 소녀는 허리띠를 풀어 한쪽 끝을 나비에게 묶고 다른 쪽 끝을 나뭇잎에 단단히 묶었다. 그러자 훨씬 더 빨라졌다. 소녀는 나뭇잎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커다란 왕풍뎅이 한 마리가 옆으로 날아가다가 소녀를 흘끗 보았다. 즉시 발톱으로 소녀의 그 가느다란 허리를 움켜잡고는 한 나무로 날아갔다. 그 초록색 나뭇잎은 시냇물 아래로 흘러가고 나비도 나뭇잎과 같이 흘러갔다. 나비는 묶여 있었기에 풀려날 수가 없었다.

 

이런! 풍뎅이가 사랑스러운 엄지 공주를 나무로 끌로 갔을 때 소녀는 얼마나 놀랐을까. 하지만 소녀는 그 착한 하얀 나비를 나뭇잎에 묶었기에 정말이지 무척 미안했다. 달아나지 못한다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풍뎅이는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소녀를 나무의 제일 커다란 잎에 앉혀두고 소녀에게 꽃에서 꿀을 따다 주면서 풍뎅이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며, 소녀가 예쁘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 나무에 사는 다른 풍뎅이들이 모두 찾아왔다. 소녀를 빤히 쳐다보며, 암컷 풍뎅이들이 자기들 더듬이를 비비며 말했다.

 

 

저런 다리가 고작 두 개뿐이네, 정말 볼썽사납다!”

 

다른 암컷 풍뎅이가 말했다.

 

더듬이도 없어.”

 

허리가 쪼그라들었어. 아휴, 창피해라! 인간처럼 보이는데. 정말 못생겼다!”

 

암컷 풍뎅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엄지 공주는 한결같이 사랑스러웠다. 소녀를 데리고 날아간 왕풍뎅이조차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 마리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소녀가 추하다고 소리쳤다. 마침내 왕풍뎅이도 그 말에 동의하고는 소녀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소녀는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었다. 풍뎅이들은 소녀를 그 나무에서 데리고 가 데이지 꽃 한 송이 위에 남겨 두었다. 소녀는 자신이 너무 추했기에 풍뎅이들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서 그곳에 앉아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누가 봐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으며 장미 꽃잎만큼이나 연약하고 섬세했다.

 

여름 내내 가엾은 엄지 공주는 숲속에 혼자 살았다. 비를 피하려 풀로 해먹을 짜서 커다란 우엉 아래 매달아 두었다. 꽃에서 꿀을 따 먹고 매일 아침 나뭇잎에 맺히는 이슬을 마셨다. 이렇게 여름과 가을이 지나갔다. 이윽고 가을이 오더니 길고 추운 겨울이 왔다. 소녀를 위해 달콤하게 노래 부르던 새들은 모두 멀리 날아갔다. 나무와 꽃은 다 시들었다. 소녀가 그 아래 살았던 커다란 우엉 잎도 쪼그라들어 바싹 마른 누런 줄기만 남았다. 소녀는 무척 추웠다. 옷은 낡아 실오라기만 남은 데다 소녀는 무척이나 호리호리하고 연약했기 때문이다. 가엾은 엄지 공주는 얼어 죽을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 하나가 소녀를 칠 때마다 삽 한가득 눈을 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키가 크지만 소녀는 고작 1인치 정도였다. 소녀는 시든 나뭇잎으로 몸을 감쌌지만 온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었다.

 

이제 소녀는 숲 끝자락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추수가 끝났기에 꽁꽁 언 땅에 바싹 마르고 앙상한 그루터기만 삐죽 나왔을 뿐이다. 소녀가 드넓은 숲속에서 당황해하며 추위에 어찌나 떨었는지! 문득 밭에 사는 쥐의 문 앞에 이르렀다. 이 들쥐는 그루터기 한가운데 작은 구멍에서 따뜻하고 아늑하게 살았다. 창고 가득 곡식이 있고, 어마어마한 부엌과 음식 창고도 있었다. 가엾은 엄지 공주는 그 문 앞에 거지처럼 서서 보리를 조금만 달라고 애원했다. 지난 이틀 동안 먹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런, 불쌍한 어린 것.”

 

들쥐가 말했다. 알고 보니 이 들쥐는 마음이 따뜻한 노파였다. 들쥐는 엄지 공주가 퍽 마음에 들어 이렇게 말했다.

 

네가 괜찮다면, 겨우내 나와 함께 지내도 괜찮아. 그 대신에 내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 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거든.”

 

엄지 공주는 이 친절하고 나이 든 들쥐가 부탁한 대로 해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들쥐가 말했다.

 

곧 손님이 올 거야. 일주일에 한번 우리 이웃이 나를 보러 온단다. 그 손님은 나보다 사는 형편이 훨씬 더 나아. 집에 방도 다 크고, 근사한 검은 벨벳 코트를 입지. 네가 그 사람을 남편으로 맞으면 너는 보살핌을 잘 받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손님은 앞을 보지 못해. 너는 그 손님한테 네가 아는 제일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거야.”

 

 

엄지 공주는 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웃이 두더지였기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두더지는 검은색 벨벳 코트를 입고 찾아왔다. 들쥐는 이 두더지가 얼마나 돈이 많고 지혜로운지 그리고 두더지의 집이 자기 집보다 스무 배나 크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는 것이 그렇게 많아도 태양과 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눈길을 준 적이 없었기에 그런 것에 대해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엄지 공주가 노래를 부를 때가 되어 풍뎅이, 풍뎅이야 집으로 멀리 날아라.’ 그리고 수도승이 길을 떠나다.’를 불렀다. 두더지는 달콤한 이 목소리에 푹 빠지고 말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퍽이나 신중한 두더지였다.

 

두더지는 자기 집 땅에서 이 둘의 집까지 긴 굴을 파 놓았다. 들쥐와 엄지 공주가 내킬 때마다 이용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터널에 죽은 새가 있는데 놀라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깃털과 부리가 달린 완벽한 새였다. 겨울에 접어들었을 때, 얼마 전에 죽은 게 틀림없었다. 새는 터널 한가운데 묻혔다.

 

두더지는 입에 썩은 나무 횃불을 물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이 모닥불처럼 환하게 빛을 냈다. 앞장서서 길고 어두운 통로를 비추었다. 그 죽은 새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두더지는 그 널찍한 코를 천정에 대고 햇빛이 떨어져 내리게 커다란 구멍을 냈다. 바닥 한가운데 죽은 제비가 사랑스러운 날개를 접고 고개를 깃털 속에 묻고 누워있다. 이 가여운 새는 확실히 추워서 죽은 게 틀림없었다. 소녀는 제비가 무척 안쓰러웠다. 여름 내내 노래하며 재잘거렸던 그 작은 새를 무척 좋아했었다. 하지만 두더지는 새를 그 짧은 다리로 툭 차고는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지지배배 울어대지 않겠군. 비참하게도 작은 새로 태어나다니. 다행스럽게도 내 아이들은 아무도 새가 될 리가 없어. 새들은 고작 지지배배 울어대기만 하니, 겨울이 오면 죽기에 딱 십상이야.”

 

들쥐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당신은 참 현명해요. 겨울에 지지배배 울어대 봤자 새한테 무슨 소용이에요. 배고파 얼어 죽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걸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 같더라고요.”

 

엄지 공주는 잠자코 있었다. 일행이 등을 돌렸을 때 소녀는 허리를 숙여 새 머리를 감싸고 있는 깃털을 옆으로 살며시 쓰다듬고는 감은 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했다.

 

여름에 내게 무척이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 그 새일지도 몰라.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해주었는데, 사랑스러운 새야.”

 

두더지는 햇빛이 들어오게 했던 구멍을 막았다. 그러고는 둘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그날 밤 엄지 공주는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지푸라기로 커다란 덮개를 짰다. 그것을 그 죽은 새에게 가지고 가서 덮어 주었다. 그러면 차디찬 땅속에 따뜻하게 누워있을 것이다. 소녀는 들쥐의 방에서 찾아낸 부드러운 엉겅퀴 줄기로 제비를 잘 여며주었다.

 

안녕, 사랑스러운 작은 새야. 안녕, 그리고 지난 여름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어 고마워. 나무들이 온통 푸르고 태양이 우리를 따뜻하게 비추어 주었을 때 말이야.”

 

소녀는 새의 가슴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가슴이 마치 안에서 무언가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살며시 뛰는 게 느껴졌다. 새의 심장이었다. 새는 죽지 않았다. 추위로 그저 말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이제 몸이 따뜻해져서 다시 살아났다.

 

가을에 제비들은 모두 따뜻한 나라로 날아간다. 하지만 너무 늦게 출발해 추워지면, 마치 죽은 것처럼 뚝 떨어져 내려 그대로 눕는다. 그러면 차가운 눈이 제비를 덮어 버린다.

 

 

엄지 공주는 너무 놀라 몸을 떨었다. 자신의 1인치 키에 비하면 새는 엄청나게 크고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소녀는 용기를 그러모아 이 가엾은 새 주위로 그 따뜻한 것을 좀 더 넣어주고 자기 침대를 덮어놓은 박하 나뭇잎을 가져다가 새의 머리 위에 덮어 주었다.

 

다음 날 밤 다시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 새에게 갔다. 새는 이제 살아났다. 하지만 너무 허약해서 잠깐 동안 눈을 뜨고 소녀를 가까스로 볼 뿐이었다. 소녀는 새 옆에서 횃불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게 유일한 불길이었다.

 

병약한 제비가 말했다.

 

고마워, 사랑스러운 소녀야. 몹시 따뜻했어. 곧 다시 튼튼해져서 따뜻한 햇볕 속을 날 수 있을 거야.”

 

, 밖은 추워, 눈이 내리고 꽁꽁 얼어붙었어. 네 따뜻한 잠자리에 그냥 누워있어, 내가 너를 보살펴 줄게.”

 

이윽고 소녀는 꽃잎에 물을 담아 제비에게 가져다주었다. 제비는 물을 마시고는 가시덤불에 날개 하나를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때문에 친구들이 멀리 날아갈 때 친구들만큼 빨리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만 기억났다. 어찌하여 소녀가 있는 곳에 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제비는 겨우내 그곳에 머물렀다. 엄지 공주는 제비에게 친절했으며 사랑스럽게 보살펴 주었다. 들쥐라든가 두더지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이 불운한 제비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태양이 땅을 따뜻하게 덮여주자 제비는 작별 인사를 할 때라고 말했다. 두더지가 천정에 뚫었던 구멍을 엄지소녀가 다시 열자 태양이 둘을 쨍하니 비추었다. 제비는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다. 엄지 공주는 제비 등에 올라타서 푸른 숲을 멀리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엄지 공주는 자신이 그렇게 떠난다면 들쥐 노파가 몹시 마음 아파할 것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난 갈 수 없어.”

 

그러자 제비가 말했다.

 

잘 있어, 잘 있어. 착한 소녀야.”

 

그러고는 햇빛 속으로 날아갔다. 제비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자 소녀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불쌍한 제비를 퍽 좋아했다.

 

지지배배!”

 

제비가 지저귀며 푸른 숲으로 날아갔다.

 

엄지 공주는 몹시 풀이 죽었다. 따뜻한 햇살 속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더더군다나 들쥐 집 위 밭에 심은 곡식이 몹시 높게 자라서 고작 1인치 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에게는 깊디깊은 숲과 같았다.

 

들쥐가 말했다.

 

너는 올여름에 혼숫감을 마련해야 해.”

 

검은 벨벳 코트를 입은 그 역겨운 두더지 이웃이 엄지 공주에게 청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더지의 아내가 되면 모직, 마직 천이 다 있어야 해. 침구와 옷장도…….”

 

엄지 공주는 물레를 돌려야 했다. 들쥐는 거미 네 마리를 시켜서 밤낮으로 소녀를 위해 옷감을 짜라고 했다. 두더지는 매일 밤 찾아왔다. 두더지는 태양이 지금 땅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구워서 여름이 끝날 때 무척 뜨거울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다, 여름이 지나가자마자, 두더지는 엄지 공주와 결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따분한 두더지가 조금도 좋지 않았기에 그 말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매일 저녁 해가 지면 소녀는 문밖으로 몰래 빠져나오곤 했다. 산들바람이 불어 이삭을 헤쳐 놓으면, 파란 하늘 조각이 언뜻언뜻 보였다. 집 밖이 얼마나 환하고 멋진지, 좋아하는 제비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었다. 하지만 제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틀림없이 제비는 저 멀리 사랑스러운 푸른 숲속에서 날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 되자 소녀의 혼숫감이 전부 다 준비되었다.

 

들쥐가 소녀에게 말했다.

 

결혼식이 4주 남았구나.”

 

하지만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 지긋지긋한 두더지를 남편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들쥐가 나무랐다.

 

허튼소리, 고집부리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 이 이빨로 확 깨물어 버릴 테니까. 넌 최고의 남편을 얻게 되는 거라고. 여왕도 두더지가 입고 있는 검은 벨벳 코트만큼 좋은 걸 입지 못해. 두더지의 부엌과 지하 창고에는 음식이 빼곡해. 그 사람을 남편으로 맞는 걸 신께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이윽고 결혼식 날이 되었다. 두더지는 엄지 공주를 집으로 데려가려 왔다. 두더지가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다시는 따뜻한 햇볕 속으로 절대 나오지 못하고 깊은 땅속에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불쌍한 어린 소녀는 몹시 상심해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들쥐는 적어도 문가에서 밖을 내다보게는 해주었다.

 

안녕, 밝은 태양아!”

 

소녀가 말했다. 태양을 향해 팔을 쭉 펴고 들쥐의 집에서 살짝 걸어 나왔다. 추수가 끝났기에 바짝 마른 그루터기만 밭에 남았다.

 

아직 피어 있는 빨간색 작은 꽃을 왈칵 껴안으며 다시 소리쳤다.

 

안녕. 안녕!! 사랑하는 내 제비를 보거든, 내 사랑을 전해줘.”

 

지지배배! 지지배배!”

 

느닷없이 머리 위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 그 제비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제비는 엄지 공주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두더지와 결혼해서 햇빛이 절대로 들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 사는 것이 몹시도 싫다고 말할 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비가 말했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오고 있으니 나는 멀리, 멀리 따뜻한 나라로 날아갈 거야. 나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 내 등에 타도 좋아. 네 허리띠로 네 몸을 묶어. 그러고 나서 우리 날아가자. 흉측한 두더지하고 그 시커먼 구멍에서 멀리, 멀리, 멀리. 산을 넘어 태양이 여기보다 훨씬 더 멋지게 비추는 따뜻한 나라로……. 언제나 여름이어서 언제나 꽃이 피는 곳으로……. 제발 나와 함께 가자. 사랑스러운 엄지 공주야, 넌 내가 땅속 어두운 구멍에서 꽁꽁 언 채 누워있을 때 내 목숨을 구해 주었어.”

 

좋아, 너와 함께 가겠어.”

 

엄지 공주가 말했다. 소녀는 제비 등에 앉아서 쭉 편 날개 뒤에 발을 올려놓고 가장 튼튼한 깃털 하나에 허리띠를 단단히 조였다. 이윽고 제비가 숲 위로, 호수 위로, 언제나 눈으로 덮여 있는 거대한 산맥 위로 날아올랐다. 차가운 공기에 추위를 느낄 때면 소녀는 새의 따뜻한 깃털 속으로 파고들고는 자그마한 머리를 밖으로 빼꼼 내민 채 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둘은 따뜻한 나라에 도착했다. 태양은 여기에서 여느 때보다 훨씬 환하게 빛났다. 하늘은 두 배로 높은 듯했다. 도랑과 울타리를 따라 탐스러운 초록색, 파란색 포도가 자랐다. 레몬과 오렌지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공기에서는 달콤한 풀 향기가 가득했다. 길옆으로 사랑스러운 어린이들이 고운 빛깔의 나비들과 놀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제비는 훨씬 더 멀리 날았다.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웅장한 초록 숲 아래, 파란 호숫가에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오래된 성이 서 있었다. 우뚝 솟은 기둥에는 포도 덩굴이 이리저리 감겨있고 그 기둥 위에 제비 여러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그중 하나가 엄지 공주를 데리고 온 제비의 것이었다.

 

제비가 공주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 집이야. 네가 저 아래 활짝 핀 예쁜 꽃 하나에서 살고 싶다면, 너를 그 안에 놓아줄게. 그러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소녀는 앙증맞은 손을 부딪치며 소리쳤다.

 

그거 멋지겠다.”

 

거대한 하얀색 대리석 기둥이 땅으로 쓰러져 세 조각으로 부러진 게 있었다. 기둥 사이에 큼지막한 하얀색 예쁜 꽃이 자랐다. 제비는 엄지 공주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 큰 꽃잎 하나에 내려놓아주었다. 소녀는 깜짝 놀랐다, 그 꽃 한가운데 작은 남자가 있었다. 마치 유리로 만든 것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머리에 자그마한 황금 왕관을 쓰고 어깨에 환하게 빛나는 날개가 달렸다. 남자는 엄지 공주보다 조금도 크지 않았다. 남자는 꽃의 영혼이었다. 모든 꽃 안에는 이 남자처럼 작은 남자나 여자가 살았지만 이 사람은 모두의 왕이었다.

 

, 저 사람 잘생기지 않았어?”

 

엄지 공주가 제비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왕은 어쩐지 제비가 두려웠다. 자신처럼 작은 이들에게는 거구의 새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지 공주를 보고는 무척 기뻐했다. 소녀는 지금껏 본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래서 황금 왕관을 벗어 소녀의 머리에 얹고는 이름을 물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고는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소녀는 모든 꽃의 여왕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두꺼비 아들, 검은 벨벳 코트를 입은 두더지와는 완전히 다른 남편감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이 매력적인 왕에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꽃 속에서 자그마한 숙녀와 신사들이 나와 즐겁게 지켜보았다. 각자 엄지 공주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최고의 선물은 커다란 은색 파리가 달았던 날개 한 쌍이었다. 그 날개를 등에 단단히 묶자 엄지 공주도 꽃과 꽃 사이를 살랑살랑 돌아다닐 수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했다. 제비는 이들 위, 자기 둥지에 자리를 잡고는 제일 잘하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슬픔이 밀려왔다. 엄지 공주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의 정령, 왕이 말했다.

 

당신을 더 이상 엄지 공주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그 이름은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이에게는 너무 흉측하거든요. 우리는 당신을 마야라고 부르겠어요.”

 

제비가 말했다.

 

안녕, 안녕.”

 

제비는 따뜻한 나라에서 다시 멀리 날아 먼 덴마크로 돌아갔다. 그곳에 요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의 창문 위에 작은 둥지가 있었다. 그 남자에게 제비는 노래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옮긴이 약력 : 김선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습니다. 소설 십자수로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국제청소년도서관(IYL)에서 펠로십(Fellowship)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김선희’s 언택트 번역교실>을 진행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꿈의 나라, 유토피아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윔피 키드」 「드래곤 길들이기」 「위저드 오브원스」 「멀린시리즈,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 『팍스』 『두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 『공부의 배신』 『난생처음 북클럽』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20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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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자 약력은 원고 말미에 기재하였습니다.

2) 옛 영국의 화폐단위 12페니가 1실링(shilling)이었다. _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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