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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작품세계 /김소월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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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작품 세계 및 진달래꽃

 

소월의 시가 이렇게 많이 읽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필연성을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듯싶다. 그것은 첫째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표상했다는 것, 둘째 여성의 정조를 표현했다는 것, 셋째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 넷째 민족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었다는 것 등이다. 소월의 시가 드러낸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한의 미학이다. 소월의 시는 어느 것을 살펴보아도 그 안에 저 끈질긴, 그러면서도 연약하고 풀 길 없는 맺힘의 감정이 내면화되어 있다. 진달래꽃 시를 읽어 보면 우리는 시인이 지니고 있는 저 풀길 없는 맺힘의 감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뚜렷한 이유도 잘못도 없으면서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오직 그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사랑한 대가가 배신인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던 까닭으로 화자에게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밖에 없었던 화자로서는 그에게 버림받는다는 사실로 쉽게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는 떠나간 님인데도 그는 님의 떠남이 진실은 아닐 것이라는 착각 혹은 기대에 빠진다. 즉 님은 일시적으로 다른 여인의 꾐에 빠져서 가출을 하였으나 머지않아 잘못을 깨달으면 틀림없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님을 곱게 보내 드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떠나가지 못하도록 앙탈을 부리거나 타박한다면 도리어 님은 이제는 정말로 정이 떨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떠나가는 님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진달래꽃까지도 뿌려 주는 것이다. 

 

1연과 제2연은 이렇게 님에게 버림받은 자신과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시인의 강한 미련 혹은 집념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제 3연에 오게 되면 화자는 님에 대하여 원망과 저주의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이 뿌려 준 진달래 꽃잎을 짓밟고 가라는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진달래 꽃잎은 님에 대한 화자의 사랑을 객관화한 상관물이므로 진달래 꽃잎을 짓밟고 떠나라는 말은 바로 자신의 가슴을 짓밟고 가라는 뜻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길 위에 뿌려진 진달래 꽃잎은 화자와의 마음과 동일화(identification)된 까닭으로 그 꽃잎을 짓밟고 떠나가는 행위는 화자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가 된다) 그 원망과 분노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크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떠나는 님을 무턱대고 나무라고 원망할 수 만은 없다. 님이 떠남이 사실은 자신의 책임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대목에서 화자는 님에 대한 원망과 저주의 마음을 거두고 자기 성찰 내지 자기 반성적 태도도 돌아온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도 님이 떠나갈 만큼 무엇인가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님에 대한 자신의 불성실이나 무관심 혹은 나태함에서 기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4연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결말은 자기 반성 혹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고백한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진달래꽃은 이차적으로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는 서로 모순된 감정들의 복합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소월의 시에서 풀 길 없는 맺힘의 감정 즉 한은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모순되는 감정들을 해소할 수 없는 자기 갈등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절망과 미련의 갈등이며, 이차적으로 원망과 자책의 갈등이다. 나는 이것을 각각 적대적 감정과 배타적 감정, 타인 지향적 감정과 자기 지향적 감정으로 파악하며 그것을 역설 혹은 아이러니의 구조로 설명한 바 있다. 우리가 소월의 시에서 보편적으로 대하는 한의 감정이란 이상의 분석에서 보듯 이처럼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긍정하면서도 부정하고, 이별하면서도 그것을 만남의 예비라고 생각하는 감정, 즉 모순의 복합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고전 문학에 반영된 일반적 정서이기도 하며, 거문고나 판소리의 흐느낌, 동양화의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선의 감정이기도 하다. 소월은 바로 우리 민족의 심층에 전승되고 있는 이 같은 한의 감정을 시화했기 때문에 민족적인 공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오세영, ‘김소월, 그 삶과 문학’(서울대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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