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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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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영랑(金永郞)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성격 : 유미적(탐미적 :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거기에 빠지거나 깊이 즐김), 낭만적(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것), 여성적, 상징적

 어조 : 간절하고 애상적인 어조

 표현 : 역설적 표현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소망의 시로 보는 경우(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1-2행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기)

    3-10행  모란을 잃은 슬픔(서)

    11-12행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결)

존재론의 시로 보는 경우(주제 : 존재의 초월과 상승)

    1-4행   생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피어남과 떨어짐, 기다림과 여읨)

    5-8행   생명의 모순성 및 숙명적 비극성에 대한 탄식

    9-12행  기다림으로의 전이와 도치(생명의 원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제재 : 모란의 개화와 낙화, 봄

 주제 : 봄을 기다리는 마음,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미(美)의 추구,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의 자세

 특징 : '기다림 - 상실감 - 기다림'의 반복과 순환 구조로 역설적 표현인 모순 형용과 여성적인 섬세하고 부드러움이 나타나며 수미쌍관식 구성임, 어순을 바꾸는 도치법.

 출전 : 영랑시집

 내용 연구

모란[화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며 시적 화자가 정서적 일체감을 느끼는 소재, 삶의 보람 = 봄]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시인이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세계는 모란이 활짝 핀 봄이다. 그러나 '아직'이라는 부사어를 통해 이 봄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자세가 오래고 숙명적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봄은 시적 화자의 희망과 소망의 상징이고,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말은 여성적 어조와 경어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란이 뚝뚝[모란이 낙화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묘사]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이별한, 멀리 떠나 보낸] 설움에 잠길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봄이 언젠가는 지나갈 것임을 알았지만 소망과 보람과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 '봄을 여읜 설움'은 삶의 보람과 의미를 한꺼번에 잃은 설움과 같은 맥락에 있다. 모란이 시적 화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모란이 지는 것을 우수(憂愁)는 '봄'이 다 가고 여름의 더위를 느끼게 한다. 시인이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세계인 봄의 끝을 알리는 것은 바로 모란의 낙화이다.]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낙화와 소멸로 화자의 슬픔을 표현]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모란 / 봄을 의미] 서운케[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서정적 자아에게 모란은 인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란이 지면 인생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장법]

삼백 예순 날 하냥[한결같이, 늘, 그대로] 섭섭해 우옵내다.['우옵나이다'의 준말, 혹은 '우옵니다'의 전라 방언][ 한 해. 그리고 기다리는 나날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서글픈 정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찬란한 슬픔의 봄 :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며, '찬란한'은 지극히 긍정적인 대상에서 사용하는 관형어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수식 받는 말과 수식하는 말 사이에 모순이 나타나는 역설적 표현(모순 형용)이다. 한편 (모순 형용을 포함한) 역설적 표현은 표면적인 모순의 이면에 심층적 의미를 갖는다. 이 시에서 '봄'은 모란이 지기 때문에 슬픈 시간이지만, 또한 모란이 피기 때문에 기쁜 시간이기도 하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러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역설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는 '절망적 슬픔'이 아니라 미래의 꿈을 잉태한 슬픔, 즉 아름다운 정서로 승화된 슬픔임을 모순 어법(관형어의 모순 형용 : (oxymoron) :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지닌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결합하는 것)을 통해 잘 드러낸 묘미 있는 표현이다. / 도치법을 활용하여 주제를 강조함]

 

 이해와 감상

  '봄'은 겨울의 불모성을 극복하고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운다. 모든 생명을 싹트게 하고 사람들은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그 봄의 막바지인 5월에 모란은 피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따라서 '모란'이 지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봄'과 '모란'은 시인에게 하나의 의미로 맺어질 수 있다. 이 때 '봄'(모란)은 시인의 희망과 소망을 상징한 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모란'을 단지 소망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꽃은 겨울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봄에 개화할 수 있다. 따라서 꽃이 아름다움이요, 희망의 상징이라 하더라도 그 이면에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인간의 인생과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모란'을 통해 '영랑'은 인간의 절망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가 쓰여진 일제 강점기 하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시의 심각성은 더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가는 '봄'과 피어나는 '모란'의 결합이다. 봄의 막바지에 모란이 피어나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모란이 지는 날이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시인이 포착하고 있는 절정의 순간은 결국 봄과 모란을 함께 상실하는 순간이라고 할 것이다. 소멸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서의 극치를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2

 이 시에서 `모란'은 여러 가지 꽃 중의 하나이면서 지상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지상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아끼고 보존하려 하여도 영원할 수가 없다. 태어난 것은 언젠가 죽어야 하며, 피어난 것은 마침내 떨어져야 한다. 태어남과 피어남이 기쁨이라면 죽음과 떨어짐은 슬픔이다. 산다는 것은 이러한 기쁨과 슬픔을 모두 맛보며 주어진 시간을 누리는 일이다. 김영랑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모란이 피기까지 그는 아직 봄을 기다린다. 아름다운 모란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어난 꽃은 져야 하는 것. 그는 어느 날 모란이 모두 지고 말면 환희와 보람을 잃고 슬픔에 잠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꼭 모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다.

 

 김영랑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노래한다. 또, `삼백 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라고도 한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일들로 차 있으며, 우리는 어느 하나에서 슬픔을 맛보더라도 다른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생활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의 모든 관심을 자신의 내면 생활과 아름다움에의 소망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하는 꽃의 소멸은 곧 모든 보람이 무너지고 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다시 봄을 기다린다. 물론 그는 다시 돌아오는 봄도 곧 지나가야 하며 새로 피어날 모란도 얼마 있지 않아 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그 봄은 보람과 환희로만 가득한 계절이 아니라 슬픔의 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맛보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아름다움을 삶의 가장 높은 가치로 삼는 그에게 봄은 삶의 유일한 보람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모순 형용은 이와 같은 아름다움에의 환희와 그 소멸로 인한 슬픔이 한데 섞인 그의 심경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느꼈던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해설: 김흥규]

 심화 자료

 '모란'과 '봄'의 상실감

 영랑의 시가 지닌 특색 중의 하나는 '오월'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수의 비율로 보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나, 영랑의 강렬한 의도적 반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후기시는 '오월', '오월 아침', '오월 한(恨)' 등과 같이 '오월'을 직접 표제로 하고 있다. 또한 '가늘한 내음'이나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초기시에서도 '오월'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처럼 모란이 피는 '오월'에다 봄의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영랑에게 봄과 여름의 경계인 '5월'은 '찬란한 슬픔'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봄 가운데서도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계절적 심상보다는 굳이 5월에 피는 '모란'을 통하여 자아의 상실감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그의 시를 더욱 애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김영랑과 순수시

 우리 나라의 순수시는 1930년대 박용철이 주재한 <시문학>(1930)을 중심으로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에 의해 지향되었다. 이 중에서도 박용철과 김영랑이 중심 인물이었다.

 

 박용철은 그 자신이 적지 않은 시를 쓰기도 하였지만 작품보다는 순수시 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론에서 더 중요한 활동을 보였다. 그가 내세운 이론에 어울리는 작품으로서의 뛰어난 성과는 김영랑에 의해 이루어졌다. 김영랑은 우리말을 다루는 언어 감각에서 김소월 이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서,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북도에 소월(평북 출생), 남도에 영랑(전남 출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주장한 순수시란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란 뜻이었다. 그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편중되면서 말을 다듬는 데에 빠졌다는 결함은 있으나, 이들에 의해 우리의 현대시가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나아갔다는 점은 우리 시사(詩史)에 빛나는 업적이라 하겠다.

 

 한편 <시문학> 동인들에 의해 주도된 순수시 문학 유파를 '시문학파'라 이르는데, 이들은 문학에서 교훈적 계몽주의나 정치적 목적 의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언어의 기교, 순수한 정서를 중시하였으며 특히 정지용에 와서 우리 시는 완전히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존재론의 시로서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시를 존재론의 시로 보고 있는 근거는 첫째 부분을 1행부터 4행까지로 보고 이를 개화와 낙화라는 꽃의 생명적 원리를 통해 생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낸 것이라 보는 것이며 둘째 부분(5행에서 8행)은 하강적, 부정적 시어 속에서 생의 비극성에 대한 절망과 탄식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부분은 (9행에서 12행) 다시 생의 양면성에 대한 심화된 인식이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개화-낙화-개화) 즉, (희망-낙망-희망)의 끊임없는 생의 변모 과정을 노래한 것이 되며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이러한 <피어남>은 생성과 소멸, 소멸과 생성의 원리 위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는 생의 양면성 또는 모순성을 투시함으로써 생의 비극성을 초극하려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어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존재의 초월과 상승을 갈망하는 존재론의 시로 볼 수 있다고 결론 짓고 있다.<김재홍, '한국 현대 시인 연구'>.

 

 김영랑의 작품 세계

 그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해, 섬세하면서도 영롱한 정서를 언어적 율조와 정돈된 시형에 의해서 형상화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그가 만년에 민족주의적인 애국시를 많이 발표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시의 본령(本領)은 역시 가냘프면서도 애수에 차 있는 순수한 탐미주의적 시 정신을 표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는 일체의 관념적인 목적 의식이나 사회성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맑고 깨끗한 감성의 세계를 추구한, 예술 지상의 유미적(唯美的) 서정만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단순한 감상적인 영탄에 그쳤던 백조파(白潮派) 시인들과는 달리 그 정서를 거르고 걸러서 맑고 깨끗하게 하여, 거울 같이 맑은 시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백조파의 감상시(感傷詩)와는 그 차원을 전혀 달리하고 있다.

 김영랑의 시세계

 영랑의 시는 순수 서정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많은 시가 의미를 크게 강조하거나 관념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언어의 미적 구조와 음악성에 치중한다는 점에서는 순수시라고 볼 수 있으며, '내 마음'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표출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는 서정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순수 서정의 세계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상징시로서의 면모와 이미지즘의 측면이 드러나기도 하며, 또한 존재론적인 생의 인식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에 비관적인 현실 인식과 부정적인 세계관이 일관되게 흐른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보다 적극적, 투쟁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지 않을 뿐이며, 이것조차 언어 미학적인 섬세한 배려가 시의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시야말로 시의 의미와 가락, 그리고 형식이 유기적으로 잘 통합됨으로써 현실 인식이 미의식으로 탁월하게 상승된 예술시의 한 모델이 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시가 당대 현실의 참상과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영랑이 시종일관 언어 미학에 끈질긴 집념을 가진 것은 당대 일제의 포악한 파시즘에 시인이 대처할 수 있는 예술적 응전 방식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로 판단된다. 그가 보여 준 한국의 정통적 서정과 가락에 대한 뜨거운 애정, 향토적 정감의 소중함에 대한 재발견의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어의 시적 가치와 그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신뢰와 실천적 탐구야말로 바람직한 시인의 사명 완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김재홍, 한국현대시인연구)

 김소월 '님' 과 김영랑의 '님'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임이 떠날 때의 상황을 가정하며 자산의 아픈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아직은 임이 옆에 있지만 임과 이별하는 앞으로의 상황을 선험적(先驗的)으로 가상하며 자신의 한과 설움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소월의 임은 '현재 시점에서 현존'과 '미래 시점에서의 부재' 라는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김영랑은 존재하지 않는 임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이라는 가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읊고 있다. 이 임은 물론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꿈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김소월의 임과 달리 김영랑의 임은 '현실에서의 부재', '꿈속에서만의 현존'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결국 김영랑의 임은 미지의 존재로 남을 뿐이기에 시적 화자의 현실 인식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랑의 시에서의 '눈물', '슬픔'의 의미

 영랑의 시에서는 '슬픔'이나  '눈물'이라는 용어가 자주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용어들이 나타내는 비애 의식은 그 이전의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있을 뿐만 아니라. 면면한 정조의 율조로 극복되어 있다. 이런 비애 의식은 그의 초기시에 나타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아내와 사별했는데, '쓸쓸한 뫼 앞에'에서와 같이 그는 여기서 '죽음'이나 '무덤'을 알 게 된다. 그러나 죽은 아내가 다시 화한 것 같은 '시악시'와 '색시'의 모습은 한국적인 촌리의 그것처럼 소박하고 티없이 맑다. 즉 영랑의 슬픔이나 눈물, 그리움은 모두가 전통 시가나 민요 속에 이어져 온 정한과 율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요를 좋아했고, 민요에 일가견을 가졌던 영랑의 정서와도 관련이 있다.

 김영랑 생가

 김영랑(金永郎)

 

 1903∼1950. 시인.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윤식(允植).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 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남도 강진 출신. 아버지 종호(鍾湖)와 어머니 김경무(金敬武)의 5남매 중 장남이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하였으나 1년반 만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다음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 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이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향리에 머물면서 1925년에는 개성출신 김귀련(金貴蓮)과 재혼하였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다가,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시작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 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후 ≪문학≫·≪여성≫·≪문장≫·≪조광 朝光≫·≪인문평론 人文評論≫·≪백민 白民≫·≪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시는 1935년 박용철에 의하여 발간된 ≪영랑시집≫ 초판의 수록시편들이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의 역정(逆情)·회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의식은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그의 초기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그 시대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망각 忘却〉·〈묘비명 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그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이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천리를 올라온다〉 등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항일기에서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나온 자학적 충동인 회의와 죽음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으로 충만된 것이 광복 후의 시편들에 나타난 주제의식이다.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고, 시비는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 박용철의 시비와 함께 있으며, 고향 강진에도 세워졌다.

≪참고문헌≫ 韓國現代文學史探訪(金容誠, 國民書館, 1973), 韓國現代詩人硏究(金軟東, 民音社, 1977), 轉形期의 韓國文藝批評(金容稷, 悅話堂, 1979), 모란이 피기까지는(金軟東 編, 文學世界社, 1981), 詩와 鑑賞-永郎과 그의 시-(鄭芝溶, 女性, 1938.9·10.), 조밀한 抒情의 彈奏-金永郎論-(鄭漢模, 文學春秋, 1964.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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